진실과 억울함의 역학에 대하여

  • 2026-01-02 17:16:59
  • 박항준

진실과 억울함의 역학에 대하여 (2기 박항준)

 

세상에는 억울한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들여다보면 억울함은 언제나 자기 기준에서 비롯된 억울함입니다. 내 말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해서 억울하고, 내가 충분한 정보를 주지 못해서 억울하고, 내 메시지가 오해받아서 억울하고, 내가 몰랐기에 억울하고, 그 순간 바르게 대응하지 못해서 억울합니다. 결국 억울함의 주어는 언제나 나이며, 주인공도 나입니다.

 

억울하면 분하고 잠이 오지 않으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기억의 조각을 맞추면 맞출수록 억울함은 커지고, 내 안에서는 어떤 진실 하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강박이 자라납니다. 그러면 사람은 억울한 감정을 참지 못해 상대에게 반복해서 털어놓습니다. 설득하려 하고, 사실을 재해석하려 하고, 진실을 입증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억울함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상대의 시간을 소비시키고 감정을 흔드는 일로 끝납니다. 억울함을 그 자리에서 바로잡아 제자리로 돌리려는 시도는 대부분 자기방어일 뿐입니다.

 

억울함은 이미 생각이 어긋났다는 하나의 사건입니다. 그 순간부터 두 사람의 생각은 수많은 지점에서 멀어져 있고, 어떤 때는 아예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합니다. 조직의 책임을 묻는 질문에 팀장의 책임부터 되묻는 대화처럼 층위 자체가 어긋나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즉석에서 진실을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억울한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지나가 버린 상대를 억지로 돌려세우려 합니다. 그러나 이럴수록 상대는 더 멀어지고, 거부하고, 갈등은 깊어져 결국 싸움이 됩니다. 상대 역시 억울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돌아올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억울함을 겪는 사람들, 예를 들어 이유 없이 뺨을 맞은 사람, 상대의 기억이 왜곡돼 내 말이 오역된 사람, 내 행동이 잘못 해석된 사람, 순간적 태도 때문에 무안이나 훈계를 들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결국 자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정말 억울하다면 그 자리에서 상대를 붙잡아 돌려세우려는 무모함보다 언젠가 다시 마주할 때를 대비하는 여유와 여백이 필요합니다. 당장의 진실을 바로 세우겠다는 고집은 사실 강박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진실을 의미하는 진(眞)이라는 글자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뜻하는 眞(진)을 떠올리지만, 옛사람들은 眞과 관계된 수많은 글자를 모두 성낼 진으로 적었습니다. 嗔(성낼진)은 입으로 말하려 하면 성이 나고, 瞋(성낼진)은 눈으로 보려 하면 화가 치밀고, 㥲(성낼진)은 마음으로 품으려 하면 격렬해지고, 謓(성낼진)은 말로 밝히려 하면 갈등이 커진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眞(진)이라는 본래의 모습은 단단한 실체라기보다 드러내는 순간 오히려 분노와 충돌을 불러오는 성질을 가진 글자였습니다. 옛사람들은 진실을 말하고, 듣고, 보이고, 마음먹는 그 순간 사람이 성낸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석에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실을 꺼내 들면 상대는 성이 나고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이 과정은 스스로는 ‘진실을 바로잡는다’고 믿지만 실은 편집증적 자기집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억울함을 푸는 것이 아니라 억울함에 붙잡혀 스스로를 괴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억울하다면 다음의 기회를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흐르면 나도 변하고 상대도 변합니다. 그때 만나는 사람은 지금의 그 사람이 아니고, 그때의 상황도 지금과 전혀 다른 맥락에서 펼쳐질 것입니다. 억울함을 즉석에서 풀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신, 시간이 만든 다른 맥락 속에서 더 큰 진실이 자연스레 드러날 여지를 남겨두는 것. 그것이 성숙한 대응이며 억울함을 덜어내는 가장 지혜로운 길입니다.

 

 

발행인 : 한정흠 | 편집인 : 박항준 | 전화번호 : 02-741-7591 | 팩스번호 : 02-764-1091 Copyright 2026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