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지금 배울 기회 있을 때에 배우고 벌이할 기회 있을 때에 벌이하다가, 그보다 더 긴급한 일이 있을 때에는 다 나서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하므로 이 일이 그 운동에 관계가 없는가 하여 방황하고 주저하지 말 것이외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한국의 청년에게 준 글로 흥사단 기관지 <동광> 1927년 1월호에 소개된 '대한 청년의 용단력과 인내력'이란 글의 가운데 부분입니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하고 있는 도산공원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 정신과 교육 정신을 기리기 위해 서울시가 1971년에 기공식을 갖고 1973년에 완공한 근린 공원입니다. 이 공원 내에는 1998년 건립한 도산안창호기념관, 1973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이장한 도산 선생의 묘소,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장한 부인 이혜련 여사의 묘소가 있으며, 도산 동상과 비석, 말씀 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체육 시설과 산책로 등이 있습니다.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지금 동아시아의 큰 문제가 발생된 이때 우리의 운동을 일층 더 전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욕심에 하고 싶은 것은 많고 또한 기회도 좋으나 일찍 준비한 것이 없었으므로 스스로 부끄럽고 분한 것을 말할 수 없습니다." 홍언(1880.2~1951.3)은 흥사단 창립 8도 대표(경기도)로 일제 강점기에 미주 한인 사회의 민족 운동을 이끈 독립 운동가입니다. 1904년 하와이로 이민해 대한인국민회의 중앙총회 부회장과 신한민보 주필을 지내며 교민 사회를 이끌었으며, 독립 운동 자금을 모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1931년 11월 9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미주에 있는 흥사단 창립위원 홍언에게 보낸 편지 중의 일부입니다. 그 해 9월 18일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도산 선생은 오래 기다리던 본격적인 항일 투쟁의 기회가 왔으나 우리에게는 아직 제대로 준비한 것이 없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우리가 3월 1일에 독립 만세 부르던 그 순전한 애국심을 잊지 맙시다. 이 순전한 애국심만 있으면 다투나 싸우나 근심이 없소." 1919년 6월 25일, 도산 안창호 선생이 상하이 교민 친목회 사무소에서 독립 운동 방침에 대하여 한 연설의 일부입니다. <사료집>은 도산 선생이 총재직을 맡은 임시사료편찬위원회가 파리 강화회의에 이어 개최된 국제연맹 회의에 제출해 한국 민족의 독립을 호소하기 위한 자료로 간행한 것(4책, 총 739면, A4판, 프린트본)으로, 한민족의 자주 독립의 당위성을 역사적으로 밝히기 위한 한일 관계사 및 일제의 침략과 학정, 그리고 한국인의 독립 운동을 자료 형태로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당시 100질을 만들었으나 현재 완질로 전하는 것은 미국 콜롬비아대학 극동도서관에 있는 1질뿐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