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신문 -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제군이여, 일은 힘의 산물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는가? 만일 이것을 믿고 힘을 찾는다 하면, 그 힘은 어디서 오겠는가? 힘은 건전한 인격과 견고한 단결에서 난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그러므로 인격 훈련, 단결 훈련, 이 두 가지를 청년 제군에게 간절히 요구하는 바이다."
* 도산 안창호 선생이 베이징에서 구술하여 흥사단 기관지 <동광> 1931년 2월호 게재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청년에게 호소함' 중에서 '인격 완성과 단결 훈련'에 관한 글의 가운데 부분에서 한 말씀입니다. 도산은 이 글에서 한국의 청년에게 건전한 인격 훈련과 더불어 단결력에 우리 민족의 사활이 달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산 선생은 대전감옥에서 가출옥한 지 28개월 만인 1937년 6월 28일, 평양 대보산 송태산장에서 일본 경찰에 다시 검거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중일 전쟁(7월 7일)을 앞두고 일본은 신사 참배 강요, 한국말 사용 금지, 민간 신문 폐간 등 한국 민족 말살 정책을 획책했으며, 좌익 세력을 총검거하여 투옥한 뒤 최종으로 남아 있는 민족주의 진영 인사들을 탄압할 계획을 세워 소위 동우회(同友會) 사건을 일으켜 도산을 비롯한 191명을 검거했습니다. 동우회는 당시 흥사단의 국내 조직이었습니다. 도산은 동우회 사건으로 일경에 검거되어 그해 11월에 검사국에 송치되었고, 12월 24일 병보석으로 지금의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듬해(1938년) 3월 10일 자정에 별세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