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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의 말씀

도산 안창호의 말씀(2465회)

도산신문 - 도산애기애타총원우회 여원동 기자 | "애국자는 대개 두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감정적 애국자요, 또 하나는 책임적 애국자외다. 감정적 애국자라 함은 다만 정으로써 나라를 애모하며 따라서 나라의 자유와 독립을 원하는 자요, 책임적 애국자라 함은 그 나라를 사모하는 마음이 물론 감정적 애국자와 같습니다. 그러나 그 애국심이 감정에 그치기 않고 그 국가의 사업을 자기의 일로 담책(擔責)하고 주인의 직분을 다하는 자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26년 상하이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흥사단 단우회 모임에서 '책임적 애국자'라는 내용으로 한 연설의 한 부분입니다. 당시 흥사단 단우 신두식의 필기로 보존되어 있던 것을 미주에서 오랫동안 흥사단 활동을 한 곽림대가 흥사단본부에 보낸 <안도산>이란 긴 원고 가운데 '도산의 연설과 언론'에 들어 있던 글입니다.

도산 선생과 의형제를 맺었던 의사 김필순(1880~1922)은 1908년 세브란스의학교(제중원의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한국 최초의 면허 의사 7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졸업 후 의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한글로 번역한 서양의 의학 서적들은 대학이나 간호원 양성소의 교과서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1907년에는 항일 비밀 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만주로 망명했습니다. 김필순은 몽고 치치하얼에 땅 몇십만 평을 사서 백여 호의 한인들을 이주시켜 이곳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 운동의 후방 기지로 개척하고자 했다. 그는 병원을 열어 부상당한 독립군의 치료는 물론 독립 운동가의 연락 거점으로 활용하도록 했으며, 거의 모든 수입을 조선독립군의 군자금으로 기부했습니다.